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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추] 사파(邪派)는 누구이며, 정파(正派)는 누구인가 그리고 영웅은?

무협영화는 실존했던 협객이란 존재와 허구의 이야기를 결합한 허실상생(虛實相生)의 장르이다. 전통적으로 중국 무협영화는 ‘무’보다는 ‘협’을 강조했는데, ‘협’ 즉 ‘협의사상’은 남을 돕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는 것, 친구에게 충심을 다함, 용감성, 재물을 중시 여기지 않음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주인공 협객에 체현되는 이러한 성격은 반드시 사실에 기초한 것은 아니다. 그들이 반드시 선한 것도 결코 아니었다. 예술작품에서 재구성한 협객의 모습은 그 당시 사람들이 열망하는 인간의 정당하고 우수한 모습이 투사된 신화적인 인물이다. 실제 협객이 대부분 그러했듯이 영화 속 협객은 비주류에 속하며 주류사회에 대항한다. 국가체제, 법률규범, 사회질서에 편입되지 않고 지배세력에 대항하는 협객의 형상은 대중들에게 대리만족을 선사해 왔다. 이처럼 협객은 민간신의 형상으로 자리해 왔고, 시대를 초월하여 정의의 화신 역할을 해 온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협영화의 배경은 이른바 난세(亂世) 즉 어지러운 시기가 된다. 백성들이 도탄에 빠져 있고, 나라는 이를 돌보지 못하는 어려운 상황에서 정의의 화신인 협객의 활동이 돋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무협영화의 배경이 되는 시기는 다양하다. 멀게는 <촉산 蜀山>(1983, 서극), <시황제 암살사건 荊軻刺秦王>(1999, 첸 카이거), <영웅 英雄>(2002, 장 이모우)의 배경인 춘추전국시대(BC 8세기-BC 3세기)부터, <소림사 少林寺>(1979, 장신영)의 배경인 수나라(581-618) 말엽, <신조협려지 웅패천하 神雕俠侶之雄覇天下>(이혜민)의 배경인 송나라(960-1279), <영춘각지풍파 迎春閣之風波>(1973, 호금전)의 배경인 원나라(1271-1368) 말기, <백발마녀전 白髮魔女傳>(1993, 우인태)의 배경인 명나라(1368-1644) 말기, <황비홍 黃飛鴻>(1991, 서극)의 배경인 청나라(1644-1911) 말기 등 중세에서 근대에 걸쳐 있다. 그 중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시기는 전국말기에서 진나라로 통일되던 시기, 명말 청초 시기, 청말 민국초기 시기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이 시기들은 여러 세력이 패권을 다투었으며 이민족이 침입하여 한족과 대치하는 상황이라는 공통점을 가진다.

<영웅>과 <시황제 암살사건> - 진시황과 자객들

두 영화의 배경인 춘추전국시대는 서주(西周)시대 봉건제도가 해체되고 중앙집권체제가 형성되어 가던 과도기였다. 전국시대에 진(秦), 초(楚), 연(燕), 제(齊). 한(韓), 위(魏), 조(趙) 이른바 전국 칠웅이 성립하게 되는데 합종 연횡하는 이들의 대립상황은 근 200여년에 이른다. 영정(진시황)은 13살에 왕위에 올라 23살부터 직접 정치를 하면서 착실히 동쪽으로 전진하며 세력을 펼쳐나간다. 영정은 사실 조나라에서 태어나 자랐다. 아버지인 장양왕이 왕자 시절에 조나라에서 인질 생활을 할 때 태어난 것이다. 그 때 역시 조나라에 인질로 와 있던 연나라 태자 단과 친분을 맺게 되는데, 후에 영정이 왕위에 오른 후 연나라는 두 사람의 친분을 고려, 단을 인질로 진나라에 보낸다. 하지만 영정은 단을 냉대했고, 이에 단은 한을 품고 자기 나라로 탈출해서 돌아가버린다. 단은 위(魏)나라 출신 자객 형가에게 영정을 암살해 줄 것을 부탁한다. 형가는 영정을 만나기 위해 진나라의 장수로 영정이 아꼈지만 연나라로 귀순해온 번어기 장군의 목과 연나라에서 가장 비옥한 땅인 독항의 지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이를 들은 번어기 장군은 스스로 목을 벤다. 마침내 영정과 만나게 된 형가, 그러나 그의 칼은 너무 짧아 암살은 실패로 돌아가고 만다.

<시황제 암살사건>의 원제 ‘형가자진왕(荊軻刺秦王)’은 “형가가 진왕을 벤다”라는 뜻인데, 이 영화는 실제 사건에다 연나라 태자 단과 영정의 어린 시절 우정 대신에 조나라 공주 조희가 영정을 사모한다는 설정을 집어 넣었다. 또 영정이 자신의 친아버지가 장양왕이 아니라 조나라 상인 출신인 재상 여불위라는 사실을 알고 광분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는데 실제로 영정의 어머니는 원래 여불위의 애첩이었다. 장양왕이 그녀에게 반해 여불위에게 간청하여 아내로 얻은 것인데, 이때 이미 그녀는 임신 중이었고 나중에 낳은 아이가 바로 영정이었던 것이다.

<영웅>에서는 형가 대신에 무명(無名)이라는 협객을 등장시킨다. 무명은 영정을 10보 이내에서 만나기 위해 장천과 비설, 파검을 처치하고 그들의 검을 가져오는데 이런 설정은 형가 이야기와 상통하는 부분이다. 또 장천과 무명이 대결할 때, 무명이 한 장님을 청해 중국 전통 악기인 축(筑)을 타게 하고, 두 사람은 마음 속으로 결투를 벌이는 장면이 나온다. 이는 실제 형가 친구 고점리란 자가 형가가 죽은 후 진나라 왕실의 추격을 피해 잠적하던 중, 축의 명수라는 소문이 나서 어쩔 수 없이 황실까지 불려 올라가 축을 타다, 마침 그 자리에 얼굴을 아는 자가 있어 들통이 나는데, 영정이 그 자의 실력을 높이 사서 죽이지는 않고 눈을 뭉개 장님을 만들어버렸다는 얘기에서 영감을 얻은 것 같다.

자객들의 시도가 실패로 돌아간 후 영정은  BC 230년에 한나라를, 228년에 조나라를, 225년에 위나라를, 223년에 초나라를, 222년에 연나라를, 그리고 221년에 제나라를 점령하여 마침내 중국 최초로 통일을 이루게 된다.

<영웅>에서 파검(원래 이름은 잔검 殘劍 이다)은 영정을 죽이면 안 되는 이유를 ‘천하’를 통일하여 더 이상 백성들이 고통 받아선 안되기 때문이라고 하며, 무명 역시 이에 동의하여 영정을 죽이지 않고, 백성들을 위해 힘써줄 것을 당부한다. 그러나 실제 그 당시에는 대륙이 통일되어야 한다는 개념은 그리 일반적인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런 상황은 별로 개연성이 높질 않다. 진시황이 통일하기 전엔 ‘중국’이란 말도 단지 국가의 중심 또는 수도라는 뜻에 지나지 않았다. 진나라 성립 이후 시기에야 비로소 ‘우리는 같은 나라 사람’ 이라는 개념이 퍼지게 되어, 후대 분열 시대에 중국은 언젠가는 통일되야 한다는 생각이 자리를 잡게 된다.

<용문객잔>, <신용문객잔> - 명말청초 환관의 전횡

중국 환관의 역사는 기원전 1300년 이상으로 올라간다. 이들 하층계급 출신의 환관들은 점점 지위가 상승, 왕족과 신하 사이의 중재자 역할을 하면서, 재산을 긁어 모으거나 국사에 참여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대부분은 한직에서 일하면서 노예 취급을 당했다. 환관 중에선 후한의 채륜(蔡倫)처럼 종이를 발명하거나, 명나라의 정화(鄭和)처럼 남해에서 국위를 떨친 사례도 있지만, 후한, 당, 명나라 때 환관이 끼친 폐해는 심각했다. 명나라 때 악명 높은 환관으로는 왕진(王振), 왕직(王直), 유근(劉瑾), 위충현(魏忠賢) 등이 있다. <백발마녀전>에도 이름이 등장하는 위충현은 ‘황제만세’를 본떠 ‘9천세’라 부르도록 했다는 일화가 전해질 정도다.

사막의 휘몰아치는 모래바람 속에 펼쳐지는 대결이 인상적이었던 <신용문객잔 新龍門客棧>(1992, 서극)에서 조소흠은 동창을 반대하는 병조판서 양원을 모함해 처형하고 그 자식들을 유배보내 양원의 부하인 주회안을 유인해 살해하려 하지만 오히려 주회안의 애인인 구모언에게 아이들을 빼앗기고 만다. 구모언은 주회안과 용문객잔에서 만나기로 한다. 무협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동창’과 ‘금의위’는 환관의 특무기관으로 오랜 기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어 원성을 샀다. 이에 맞서는 것이 바로 동림당(동림파)의 사대부들이다. 이들은 무석(無錫) 지방의 동림서원을 중심으로 한 학파이자 정치적 모임이었다. <신용문객잔>과 그 원본인 <용문객잔>(1966, 호금전)은 실제로 있었던 사건인 ‘토목보의 변’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토목보의 변’이란 환관 출신 왕진의 권유로 몽골 정벌에 나섰던 정통제 영종이 도중에 회군하다 토목보(土木堡)란 곳에서 몽골에 포로로 잡혔던 사건을 말한다. 영종은 다시 돌아왔지만 이미 이복동생이 경태제로 등극한 상황이라 자금성 깊은 곳에 연금되고 만다. 경태제가 죽고 영종이 복위한 후에 환관들은 당시 몽골 정벌을 반대했던 우겸이 경태제를 옹립했다는  누명을 씌워 죽이고 가족들을 유배 보낸다. 환관들을 이들을 없애려 사람을 보낸다. 이들이 머문 곳이 바로 장강(양자강) 소삼협인데, 장강삼협의 지류로서 마치 삼협의 경치를 축소시켜 놓은 듯 하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소삼협은 용문협(龍門峽), 파무협(巴霧峽), 적취협(滴翠峽)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경치가 빼어나기로 유명한 곳이다. 용문객잔은 바로 용문협 부근의 객잔 즉 여관인 것인데, 영화에서는 실제와 반대되는 돈황 부근의 황량한 사막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밖에도 동창과 서창간의 다툼을 그린 영화로는 <신유성호접검 新流星蝴蝶劍>(1993, 맥당걸), <소오강호 笑傲江湖>(1990, 서극 외)가 있으며, <협녀>(1971, 호금전)의 주인공 양혜정의 아버지는 환관에게 고문을 받다가 숨을 거둔 동림파 사대부로 그려지고 있다.

<황비홍> - 외세와의 대결

청말에 이르러 중국은 국내외로 거센 변화의 물결에 직면하게 된다. 광동성의 중심 도시인  광주는 1843년 중국 최초로 대외무역항으로 지정되어 서양문물을 가장 빨리 접하게 된다. 1875년 광서제 시대를 배경으로 한 <황비홍>에서 청년단의 사범 황비홍은 중국 젊은이들을 납치하여 샌프란시스코에 값싸게 팔아넘기는 잭슨 일당에 맞선다. 실존 인물인 황비홍을 주인공으로 한 <황비홍>시리즈는 1949년 호붕 감독의 <황비홍전>을 시작으로 1994년 서극 감독의 <황비홍> 이후 연속으로 등장한 시리즈물에 이르기까지 100편이 넘는 세계 최장의 시리즈이다. 1950-60년대 시리즈에서 인의예지신이라는 유교적인 미덕을 한 몸에 가진 완벽한 인물이었던 황비홍은 <취권 醉拳>(1979, 원화평)에서는 문제아로 등장하기도 하지만, 1994년 서극의 <황비홍>에서 뛰어난 무공으로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려는 영웅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황비홍에 대해서는 확실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황비홍>에서 돼지고기 장수로 등장하는 임세영이 스승 황비홍에 대해 남긴 기록이 거의 유일한데, 역사적 사실에 부합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고 한다. 황비홍은 당시 광동지역에서 활발했던 반청복명 운동의 중심 세력이었던 천지회와 연계되어, 광동군과 광주의용군의 무술교육도 맡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이 역시 확실치는 않으며 18세기 후반부터 일어나기 시작, 1895년부터 지속적으로 봉기했던 비밀 결사의 존재가 반영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황비홍> 등장 인물 중에 임세영과 유영복(劉永福)은 실제 인물이다. 임세영(1861-1942)은 청나라 말기 광주에서 열린 무술대회에서 일등을 차지한 인물이었고, 영화 속에서 베트남으로 떠나면서 황비홍에게 남경조약의 내용이 쓰여진 부채를 건네주며 아픔을 잊지 말라는 유영복(1837-1917)은 빈농의 자식으로 태어나 천지회에 가담하여 흑기군을 창설하여 활동하다 베트남으로 건너가 프랑스와의 전투에 참여한 후, 귀국하여 청불전쟁과 청일전쟁에도 참여한 바 있는 무관이다. <황비홍> 초반에 보면 외국인 선교사의 찬송가에 중국인 악대가 맞서는 장면이 나온다. 실제로 중국 전통을 인정하지 않았던 기독교에 대한 반감은 심각해서, 1860년 이후 당시 반기독교 사건이 만연했었으며 1890년에 절정에 이른다.

한편, 1860년 영국과 맺은 북경조약에 따라 중국인 노동자의 해외 취업이 합법화되면서 해외 이주가 증가한다. 그러나 그 실상은 가혹했고, 이주하는 사람이 줄어들자 값싼 노동력이 절실했던 미국은 강제로 노동자를 끌고 가기도 했다. <황비홍>의 잭슨 일당이 바로 그런 세력이다. 이주 노동자에 대한 묘사는 <중화영웅 中華英雄>에도 등장한다. 중화민국이 설립된 다음해 1913년, <중화영웅>(1999, 유위강)의 화영웅(華英雄)은 사부를 만나러 돌아온 후  아버지의 처참한 시체를 목도한다. 일본인들에게 복수를 하고 미국으로 떠난 화영웅은 저임금과 혹독한 노동에 시달리다 차이나타운에서 인력거 운전수로 일하게 된다.

무협영화의 역사적 배경은 영화를 이끌어나가는 주요한 동력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과거는 현재에 비추어 바라보게 되어 있는 것, <황비홍>에는 당시 반환을 앞둔 홍콩 사람들의 중국, 영국 사이에 끼인 정체성에 대한 고찰이 담겨 있으며, 무협영화에서 광활한 중원은 대만 사람들에겐 언젠가는 돌아가 정복하고픈 염원의 땅 즉 중국대륙이 되기도 한다. 과거에 현재가 투사된 무협영화에서 ‘사파’와 ‘정파’, 그리고 ‘영웅’은 항상 유동적이다.

최근 무협영화의 배경이 거꾸로 돌아 고대로 향하고 있다. 중국의 대표적인 감독 첸 카이거와 장 이모우 모두 기원전 진시황의 통일 무렵을 배경으로 삼았다. <영웅>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가. <와호장룡>과는 달리 중국에서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는 <영웅>은 어쩐지 최초의 통일정권 진나라를 그리워하는 중국의 열망-대만, 티벳, 몽골까지 정복하고픈-을 드러내고 있는 것 같다.

<출처: nkin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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