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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 영화의 좋은 친구 마틴 스콜세지

<택시 드라이버 Taxi Driver>, <분노의 주먹 The Raging Bull>, <좋은 친구들 GoodFellas>과 같은 영화에서 폭력의 문제를 빌어 ‘아메리카의 비극’을 보여준 마틴 스콜세지의 신작 <갱스 오브 뉴욕 The Gangs of New York>은 의외의 영화다. 1860년대 뉴욕의 발흥기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가 뉴욕에 정착한 시실리계 이민자의 후손인 스콜세지의 내밀한 삶, 그리고 뉴욕을 배경으로 영화를 즐겨 만들었던 스콜세지의 그간의 영화경력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볼 수 있지만 그럼에도 이 영화의 거대한 규모(30년간의 구상과 270일이 넘는 촬영기간, 거대한 세트 등)와 색다른 신체의 등장(로버트 드 니로, 조 페시 같은 배우들이 아니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카메론 디아즈와 같은 할리우드 스타를 기용했다는 사실!)은 스콜세지의 이전 작품들에서 느껴지는 고독한 분위기와는 사뭇 달라 보였기 때문이다.

비열한 거리의 영화

마틴 스콜세지의 영화는 대부분 이중적인 의미에서 자신의 삶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그 하나가 1910년 뉴욕에 정착한 시실리계 이민자의 후손이란 그의 혈통에 근거한 것이라면 다른 하나는 어린 시절 즐겨 보았던 영화들이다. 스콜세지는 어린 시절 거리에서 자행되는 잔인한 폭력에 깊은 인상을 받았고 가족 공동체에 대한 강한 자부심을 지닌 이태리계 이민자들과 마찬가지로 종교에 신실한 믿음을 지녔고, 거리에서 조직 범죄와 일상적으로 접촉하고 있었다. 이러한 체험이 그의 영화에서의 고독함과 폭력의 근원을 이루고 있다면, 이런 끔찍한 현실을 벗어나기 위한 방편으로 극장을 찾았던 유년기의 체험과 즐겨본 영화들은 그의 이후 영화에 자양분을 제공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일종의 커넥션을 만들어냈다.

마틴 스콜세지는 자신의 삶 대부분이 교회와 영화관에서 형성되었다고 말하곤 하는데, 이것은 앞서 말했듯이 그의 영화를 관통하는 대립적인 두 힘이기도 하다. 거리의 폭력과 종교적인 구원의 테마는 ‘거리의 이야기’를 다룬 <비열한 거리 Mean Streets>와 <택시 드라이버>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가령 <비열한 거리>에서 찰리가 ‘죄를 교회에서 해결할 수는 없다. 그것은 거리에서나 가능하다’라고 말한다거나 <택시 드라이버>에서의 주인공 트래비스가 뉴욕의 풍속적인 더러움을 혐오한 나머지 인간 쓰레기와도 같은 악당들을 응징하는 것을 마치 고귀한 성직자의 사명인 것처럼 여기는 것에서 나타나고 있다.

스콜세지의 영화에서 거리는 인물을 감싸는 분위기이자, 인물의 내면이 투영된 세계이기도 하다. 그래서 스콜세지의 '거리의 영화'에는 다큐멘터리와 픽션이라는 두 대립적인 영화적 스타일이 서로 긴장을 이루며 한 데 어울려 있다. <비열한 거리>에서 스콜세지는 시종일관 흔들리는 카메라(들고 찍기)로 인물과 세계를 보여주고 있는데, 이것은 인물, 장소, 대상, 사건에 대한 객관적인 탐구(다큐멘터리 스타일)이자 인물의 흔들리는 주관성을 표현하는 정신적인 이미지(흔들리는 미국인의 초상)이기도 하다. 이 둘의 결합을 통해 스콜세지의 사실적인 픽션이 완성된다.

도시를 배경으로, 비정한 거리의 폭력을 다루는 스콜세지의 영화적 특징은 뉴욕 인디 영화의 대부라 할 수 있는 존 카사베츠의 혁신적인 영화 <그림자들 Shadows>(1959)에 많은 부분 기대고 있다. 카사베츠가 <그림자들>에서 맨해튼 거리를 무대로 아마추어 배우들의 즉흥적인 연기를 흔들리는 카메라에 담아내며 도시와 비정한 거리로 하여금 인물처럼 스스로 말하게 했다면, 스콜세지는 이 거리와 도시에 신체를 부여했다. 스콜세지의 영화에서 도시와 거리는 신체로 확장된 공간이며, 여기에서 벌어지는 폭력과 범죄는 그런 도시라는 육체가 일으키는 경련과도 같은 것이다.

여기에 스콜세지 표 영화의 전문 배우들이 그 힘을 발휘하고 있다. 로버트 드 니로, 조 페시, 하비 케이틀과 같은 스콜세지 영화에 단골로 출연하고 있는 배우들은 도시의 경련과도 같은 폭력을 체현하는 새로운 인물들이다. 이들은 비열한 거리를 어슬렁거리며 뜻하지 않은 방식으로 갑작스럽게 폭력을 행사한다. (아마도 조 페시 만큼 이런 폭력의 세계를 가장 멀리 까지 보여준 배우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스콜세지의 영화에서 도시(거리)와 인간의 신체 사이의 경계는 소멸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스콜세지는 이런 도시의 생리학에 근거해 인물의 신체를 도시의 거리에 녹여 넣고 있다. 여기서 폐쇄적인 세계, 폭력과 친밀감을 느끼는 인물들은 뒷골목이나 허름한 아파트, 섹스와 폭력이 난무하는 게토화된 공간에 거주하며 망상에 시달린다. 스콜세지가 묘사하는 고독한 독신자의 삶과 그들이 저지르는 과다한 폭력은 그래서 물리적인 것만이 아니라 보다 정신적인 것이다.

갱스터 영화 - 미국의 성공 신화 다시 쓰기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가 <대부 The Godfather>의 3편을 만든 1990년에 스콜세지는 갱스터 영화 <좋은 친구들>을 만들었다. 두 영화 모두 마피아 패밀리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차이는 있다. <대부>가 정통 마피아, 즉 시실리아 혈통의 마피아 패밀리를 다루고 있다면 <좋은 친구들>은 시실리아 혈통이 아니기에 마피아에서 천대 받는 주변부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으며, <대부>가 거대한 서사극이라면 <좋은 친구들>은 실화를 근거로 한 사실적인 다큐멘터리에 가깝다. 게다가 <좋은 친구들>에서의 마피아 패밀리는 <대부>의 패밀리와 달리 우정과 신뢰, 돈독한 형제애에 근거한 조직이 아니라 단지 돈을 벌기 위해, 소비 사회에서 성공하고 출세하기 위해 조직에 가담하고 함께 일할 뿐이다. 그래서 <좋은 친구들>은 <대부>의 마피아 패밀리에 대한 근사한 환상과 신화를 깨는 영화에 가깝다.

마피아 패밀리의 삶을 서사시가 아니라 구체적인 현실(비즈니스)로 그려내기 위해 스콜세지는 <좋은 친구들>은 물론 1995년에 만든 또 한 편의 갱스터 영화 <카지노 The Casino>에서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 기법을 자주 사용한다. 주인공의 일인칭 내레이션은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갱들의 이야기가 실화에 근거한 것임을 느끼게끔 하며, 이야기에 단순하게 몰입하는 걸 방해하고 비판적인 거리를 두게 한다. 영화에서 보이는 갱들의 폭력은 정말이지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잔인한데, 그 때문에 이를 설명하는 내레이션은 관객을 허구의 세계로 안내하는 고전적인 내레이션(할리우드 느와르의 컨벤션)이라기보다는 우리가 보고 있는 이미지(마찬가지로 영화 속 인물들이 경험한 세계)에 대한 논평에 가깝다.

스콜세지의 갱스터 영화는 비열한 거리의 이야기처럼 갱의 일상적인 현실을 세부적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대부분의 갱 영화가 범죄와 폭력은 적나라하게 보여주면서 정작 그들이 어떻게 일상을 영위하고 있는지, 그들의 패밀리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를 적게 보여주는 반면, 스콜세지의 영화는 패밀리를 하나의 기업으로 묘사하면서 그들의 대차대조표를 세밀하게 공개한다. <카지노>에서 주인공 에이스(로버트 드 니로)는 카지노를 운영하는 나름의 원칙(영화 속 한 장면에서 에이스는 자신에게 세 가지 원칙이 있는데, 그 첫 째는 옳은 것이며, 둘째는 잘 못된 것, 그리고 셋째는 내 방식이라고 말한다)과 어떻게 라스 베가스의 카지노가 돈을 벌게되는지를 상세하게 설명하고, 그의 동료이자 갱인 니키(조 페시)는 카지노의 자금이 캔사스의 마피아들에게 어떻게 유입되고 있는가를 설명한다. 그런 점에서 영화 <카지노>가 보여주는 사막화된 공간 위의 천국과도 같은 라스 베가스는 카지노와 마피아, 현란한 표면의 세계와 드러나지 않은 지하 세계가 공존하는 탐욕의 세계이다.

스콜세지는 <좋은 친구들>에서 허름한 빈민가 뒷골목에서 놀던 별 볼일 없는 청년이 갱의 패밀리란 이유만으로 고급 레스토랑에 입장하기 위해 줄서서 기다릴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마찬가지로 <카지노>는 에이스와 니키라는 두 인물의 흥망성쇠를 통해 카지노화된 자본주의의 흥망성쇠를 또한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이 두 영화는 실화를 근거로 실제 갱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지만 다른 한편 미국의 성공신화에 대한 은유를 내포하고 있으며, 미국의 신화를 다시 쓰고 있는 영화라 할 수 있다.

스콜세지의 새로운 모험

마틴 스콜세지는 조지 루카스, 스티븐 스필버그,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윌리엄 프레드킨과 같은 세대의 감독이지만, 프레드킨이 <프렌치 커넥션 The French Connection>과 <엑소시스트 The Exorcist>로 대단한 흥행성적을 올리고 코폴라가 <대부>로 공전의 히트를 올리며 오스카상을 수상하거나 루카스와 스필버그가 상업적인 성공을 거둔 것과는 대조적으로 그 동안 자신이 만든 영화로 대단한 흥행성적을 올리거나 그 흔한(?) 오스카상을 수상하지도 못했다. (<택시 드라이버>는 그가 만든 최고의 걸작이라 평가받고 있지만 이 영화는 그 해 오스카 상 감독 부문에 선정되지도 못했었다.) 여기에 스콜세지의 고독이 있다.

미국의 영화학자 데이빗 톰슨은 스콜세지의 영화가 <분노의 주먹>이후로 끊임없이 비평적인 논쟁을 양산해냈다고 말한다. 그것은 무엇보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의 영화가 점증하는 고독과 불안정성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콜세지의 지적인 사고, 번뜩이는 테크닉, 그리고 영화에 대한 열정은 여전히 놀랍기만 하다. 하지만 그의 근작들인 <좋은 친구들>과 <카지노>가 <비열한 거리>나 <택시 드라이버> 보다 더 진정성이 배어있는 작품인지, 그가 다루는 테마가 여전히 진행중인 것인지, 혹은 <케이프 피어 The Cape Fear>와 같은 영화가 자신의 영화에대한 매혹을 반영하는 오마주인지 아니면 제작의 이유조차 불분명한 아류작인지, <예수의 마지막 유혹 The Last Temptation of Christ>과 <쿤둔 Kundun>과 같은 영화가 내밀한 정신적인 경험을 보여주는 걸작인지, 아니면 단순한 시도에 머문 영화인지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그간 스콜세지 영화가 보여준 진정한 매력과 활력은 할리우드 영화가 제공하는 이데올로기를 전면적으로 거스르는 것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었다. 스콜세지는 <록키 Rocky>가 한 때 할리우드에서 복싱 영화의 붐을 만들어낼 때, 공허하고 우울해 보이는 그것도 흑백으로 <분노의 주먹>를 만들었고, 레이건 정권 시기 ‘아버지의 귀환’이란 테마가 극장가를 장식할 때 오이디푸스적인 갈등이 결코 해소되지 않은 <코미디의 왕 The King of Comedy>을, 그리고 1980년대를 지배한 여피 이데올로기에 도전하며 성공신화를 깨는 <좋은 친구들>을 만들기도 했다. 스콜세지는 또한 이들 영화에서 할리우드 영화의 컨벤션을 따르면서, 동시에 그것을 위반하고 있다. 그는 끊임없이 할리우드 영화의 전통(가령 혹스와 존 포드, 마이클 파웰 등)을 추종하며, 이들 영화와 커넥션을 맺으려 했고(<택시 드라이버>는 존 포드의 <존 웨인의 수색자 The Searchers>와 사무엘 풀러의 <네이키드 키스 Naked Kiss>, <분노의 주먹>은 마이클 파웰의 <분홍신 The Red Shoes>, <케이프 피어>는 <사냥꾼의 밤 The Night of the Hunter>, <블루 벨벳 Blue Velvet>과 커넥션을 맺고 있다) 동시에 자신이 흠모하는 유럽 영화의 정수들을 영화 속에서 표현해내려 했다.

그의 신작 <갱스 오브 뉴욕>은 그간 스콜세지가 보여준 퍼스널한 영화와는 사뭇 다른 거대한 서사극으로 스콜세지가 할리우드에서 어떤 모험을 벌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마도 스콜세지는 이 영화를 통해 좀더 대중적인 관심을 도모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이미 스콜세지는 <케이프 피어>로 상업 영화의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순수의 시대 The Age of Innocence>로 할리우드의 시스템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굳건히 했다). 이미 환갑을 넘긴 스콜세지가 두 명의 스타를 대동하고 뉴욕의 역사적 기원을 찾아 나서는 모험을 감행한 것은 그 자체로도 대단한 일이라 할 수 있다. 그 때문에 그의 옛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또 적지 않은 비판을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스콜세지는 여전히 영화의 좋은 친구(good fella)이다. 스콜세지는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이태리 영화에 대한 개인적인 추억이 가득 담긴 <이태리 영화기행>과 같은 아름다운 영화를 만들기도 했고, ‘모던 라이브러리’의 영화 시리즈의 책임 편집자로 제임스 아제와 같은 평론가의 책을 다시 출간하기도 했다. 이런 영화 감독은 정말이지 흔치 않다. 그래서 ‘나는 영화를 사랑한다. 그것이 내 삶의 전부이며, 그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라고 말한 스콜세지의 고백은 앞으로도 영원할 것으로 보인다.

<출처 : nkin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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