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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yunwook(2009-01-19 01:48:14, Hit : 2324, Vote : 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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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점주인 박정재


나의 고향 부산 거제리에는 시원한 10차선 도로가 있다. 아마 10차 도로가 전혀 필요없을 시절에 어떤 정치적, 경제적 논리로 세워졌을 법한 어울리지 않는 10차선 도로이다. 지금에서야 교통체증없이 마냥 쌩쌩 달리기만 하는 좋은 도로로서 '누구누구 대통령' 의 선견지명이라는 얘기도 심심찮게 나온다. 물론 본인의 아버지 또한.

그럴지도 모르지. 대통령이라는 사람들이 언제나 삽질(요즘 회자되는 사전 그대로의 삽질이 아님)만 하는 사람들은 아니니깐.

그 시원한 도로에는 원어민들이 흔히 부르는 '부산은행 육교' 가 있다. 부산은행이 떡하니 있고 그 옆에 육교가 있다. 육교를 건너 위로 올라가면 또 다른 거제리가 펼쳐진다. 그 아래쪽에는 내가 살던 거제리고. 우리는 본동이라고 하고 저 위쪽과 안쪽을 안동네니 뭐니 이상한 명칭을 갖다 붙였다. 그 '부산은행 육교' 아래로 내려오면 거제시장이 펼쳐진다. 아... 거제시장. 이름만 들어도 친근하다.

부산은행 육교 옆에 서점이 하나 있었다. 아니, 두 개가 있었다. 하나는 대성서점이고 하나는 없어진지 오래라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암튼, 대성서점은 거제리에서 방귀 한 번 꼈다는 놈은 다 아는 그런 mecca 이다. 본인이 주로 이용하는 '인터파크도서' 가 나오기 전, 모닝365, YES24 등이 나오기 전 대성서점은 다가올 인터넷의 위기를 감지하지 못한 채 꿋꿋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인터넷 서점이 부흥하고 오프라인 서점이 하나, 둘 망할 때 대성서점은 '내가 낸데..' 하는 식으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본인, 부산에 자주 가지는 못하나 서울에 있을 때는 적어도 3개월에 한 번은 갔는데 대성서점을 보고 있느라면 본인이 뿌듯해지곤 했다.

2008년 말, 세상에서 제일 달콤한 휴가를 맞아 부산에 갔다. 작은누나도 내려오고 전가족이 모이는 자리가 되었다. 본인, 싱가폴로 떠나온 이후 이런 자리는 1년에 두 번이 힘들다. 그만큼 소중한 시간이었다. 저녁을 먹고 큰누나, 작은누나랑 바람이나 쐴겸 해서 서점을 가자고 했다. 어디? 물론 대성서점이다. (우리 가족은 이렇듯 건전하다. '다같이노래방' 은 10년 전에나 한 번 해보고 안 한다)

누나들은 조카들 책을 사고 나는 이것저것 보러갔다. (주석 : 본인은 책방을 매우 좋아한다. 인터넷 서점에서 허우적거리는 것도 굉장히 좋아한다. 서울에 있을당시 거의 2-3달에 한번은 10만원 상당의 책 '충동구매' 가 진행되곤 했다. 그렇다고 책을 많이 읽나? 음.. 솔직히 맘 같지 않다. 하지만 상당히 애쓰는 편이고 항상 채찍질한다. 책 많이 읽는 사람이 승자라는 믿음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책을 고르고 있는데 누가 내 이름을 불렀다. "현욱아! 석유 잘 팔고 있나?"

나는 석유 파는 사람이 아님에도 나의 country 친구들은 그런 줄 안다. 석유화학이라는 것이 일반인들에겐 많이 생소하기 때문이겠지만. 암튼 그 목소리는 정재였다. '지하철 박' 이었던 정재.

정재는 고등학교 2학년 땐가 3학년 때 나랑 같은 반이었다. 내가 본 사람 중에 운동을 제일 잘했던 친구이기도 하고 이 친구는 공군사관학교 응시한다고 '공사 100일주(시험치기 100일전의 고삐리들의 술마시기 행사)' 때 학교에서 술먹고 떡이 되어서 서로 울고 싸우고 하다가 주민의 신고로 경찰들이 죽도를 들고 출동했었던 추억의 그 현장에 나랑 있던 친구였다. 결국 공사는 가지 못했지만 고등학교 때 정재와의 추억은 많다. 내가 참 좋아했던 친구이기도 하고.

"니 여기서 뭐하는데 책도 안 읽는 놈이" 라는 나의 질문에 (10년 만에 만난 친구에게 한 첫 질문이다) 정재는 간단히 대답했다.

"내꺼다"

정재는 서점을 인수한 것이다. 아직도 나는 서점 아저씨의 얼굴이 생각나는데 그 아저씨가 정재에게 가게를 인수했단다. 정재는 학교졸업 후 '동보서적' 이라는 회사에 취직을 하였고 (부산의 '교보문고'다) 그렇게 맺은 책과의 인연이 서점을 인수하게 만든 것이다. 물론 여전히 책은 읽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책 속에 묻혀사는 그 친구가 얼마나 부럽던지. 낮에 회사갔다가 저녁에 서점들러 일보고 10-11시에 집에 간다고 한다. 내가 책 고르는 사이에 전화로 책 주문하는 모습을 보며 뻥이 아닌걸 알았다.

사람의 인생이란 이렇듯 알 수 없다. 고등학교 당시로 거슬러 올라가 누가 나한테 "정재가 서점을 운영할 확률은?" 하고 물어봤다면 나는 조금의 망설임 없이 "0%" 라고 답했을 것이다. 그런 정재가 거제리의 mecca 인 대성서점의 주인이 되어있었다.

이래저래 책 팔아준다고 5-6만원 어치를 사고 나오는 내 발걸음이 무거웠다. 싱가폴에 산다고 부럽다고 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나는 그 날 정재가 너무너무 부러웠다. 물론 지금도.




거제리女 (2009-05-07 16:07:55)
저도 나름 추억에 잠겨 읽었습니다. 대성서점 옆에 있다가 없어진 서점이름은 '영남서점'이었죠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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