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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djbae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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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의 공간에서 근사한 실전무예를 보여주는 유일한 배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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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술인 이연걸
1971년 가을 베이징의 어느 초등학교 하교 시간, 학생들이 모두 줄지어 집으로 돌아가는데 교문 앞에 몇 명이 1학년짜리 소년이 나오기 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소년이 나오자 아이들은 함께 인근 체육학교로 발길을 옮겼고, 다른 아이들은 고학년의 호위를 받는 소년을 부러움 어린 시선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드러내진 않아도 내심 그 시선을 즐기며 빙그레 웃는 소년의 이름은 바로 이연걸이다.
이연걸은 8살 되던 해 여름방학 때 처음으로 무술(우슈)를 접하게 된다. 자신의 의지였다기 보다는 그저 방학동안 초등학생들이 의무적으로 배워야 했던 여러 스포츠 과목 중 무술반에 끼게 되면서 배우게 된 거였다. 그러나 이연걸의 천부적인 재능은 곧 빛을 발한다. 무술반 천 명 중에 방학이 끝나고도 훈련을 받게 된 아이들을 20명 남짓, 그 중 유일한 1학년이자 가장 뛰어났던 이연걸이었지만 너무 작고 어려 항상 고학년 형들이 데리고 훈련을 다녀야 했다. 처음엔 이 모두가 재미있고 신났지만 오래지 않아 이연걸은 "다들 노는데 나만 수업을 더 받아야 하는"상황을 깨닫는다. 게다가 훈련은 점점 혹독해졌다. 그러나 승부욕이 강했던 이연걸은 포기하지 않고 훈련을 계속해, 이듬해 출전한 무술경연대회에서 최고상을 수상한다. 이후 이연걸은 거의 모든 대회를 휩쓸면서 무술인으로 명성을 쌓아간다. 1979년 <소림사>로 데뷔하기 전까지 그의 유소년기는 거의 전적으로 무술 연마에 바쳐졌다.
이소룡 이후 진짜 중국 전통 무술을 할 수 있는 배우가 드문 상황에서-성룡이나 홍금보는 경극학교 출신이다-당대 무술 10걸에 뽑혔던 이연걸의 영화계 데뷔는 여러모로 화제였다. 이연걸은 이후 영화에서 기억할 만한 여러 명장면들을 선사한다. <영웅>(2002)>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결은 역시 이연걸과 견자단의 싸움이다. 실제 둘은 절친한 친구이기도 한데 견자단 역시 무술 고수이다. 그래서인지 특수효과와 편집을 통해 배우의 동작을 단절시켰던 다른 격투장면과 달리 이 둘의 대결에선 화면에 둘이 한꺼번에 들어오는 장면이 유달리 많다. 두 사람의 외면이 아니라 내면이 충돌한다는 설정은 평소에 무술의 외적인 면과 더불어 내적인 단련을 강조해 왔던 이연걸의 무술 철학과도 맞닿아 있다.
이밖에도 이연걸은 <태극권>(1993)에서는 진가태극권을, <황비홍2>(1992)에서는 화려한 봉술을 선보이면서 중국 무술의 진면목을 영화 속에 심어왔다. 그러나 열과 성을 다해 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기술을 담았던 영화 <정무문>(1994)이 실패하면서 <로미오 머스트 다이>(2000)에서는 와이어, 특수효과와 결합을 시도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비판이 많자 이연걸은 다시 진실한 격투 장면 구상에 힘썼고, 그 결과 <키스 오브 드래곤>(2001)에서는 점혈침술과 함께 특유의 절도 있고 빠르며 힘있는 격투 장면을, <더 원>(2001)에서는 특수효과를 곁들이면서도 팔괘장과 형의권이라는 두 가지 상반된 성격의 무술이 맞붙는 장면(이연걸 대 이연걸)을 보여 좋은 평가를 받는다.
영화인 이연걸
"도무지 영호충을 이해할 수 없어요." 1991년 <동방불패> 촬영 현장에서 이연걸은 감독에게 자꾸 질문을 던졌다. 특히 영호충이 어떻게 다섯 명의 여자에게 동시에 집적대는지 불만인 순진한 이연걸에게 감독은 "영호충은 뜬구름 같은 떠돌이로 자유로운 개성의 소유자이기 때문에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답한다. 고지식한 이연걸은 황비홍이나 방세옥과는 달리 끝끝내 영호충을 이해할 수 없었고, 영화가 끝나자 자신의 영화사를 차린 후 마음에 온전히 들지 않는 역할은 사양한다. 자아가 강하고, 입바른 소리를 잘하며, 정의감과 평등의식이 투철한 청년 이연걸에게 영화란 생각보다 쉽지 않은 길이었다.
데뷔작 <소림사>를 찍을 때만해도 힘든 무술 훈련을 안 해도 돼서 너무 편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두 번째 영화 <소림사2: 소림소자>를 45도가 넘는 혹서에 시달리며 촬영을 하면서 예민한 청년은 점차 영화가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급기야 세 번째 영화 <소림사3: 남북소림>에서 홍콩 스태프와 대륙 출신 스태프들 간에 심한 차별대우가 행해지는 것을 본 이연걸은 제작자에게 찾아가 항의하고 이제 다시 영화를 찍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만다. 그 후 이연걸은 영화를 접고 사업을 시작하지만 여의치 않자, 88년 결혼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한다. 한 동안 집에서 영어공부를 하며 무술 지도로 생계를 잇던 이연걸은 <중화영웅>(1988)의 감독으로 영화계에 돌아온다. 그러나 <용재천애>(1988), <용행천하>(1988)가 계속해서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해 의기소침했던 이연걸은 서극의 <황비홍>(1991)에 출연하면서 기사회생한다. 이어 <동방불패> <황비홍2>에 출연하여 잇다라 좋은 반응을 얻었지만, 이연걸에게 영화는 다시금 부담으로 다가왔다. 영화마다 계속되는 부상과 매니저 피살을 겪으면서 이연걸은 영화 작업을 계속 할 것인지에 대한 장고에 돌입한다. 그 결과 영화를 포기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지만, 이 시기를 겪으면서 이연걸은 비로소 강호(영화계)의 험난함과 비정함에 대해 깨달았고 비로소 영호충의 감성을 이해하게 되었다고 한다.
조국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1974년 하와이 호눌룰루 공항에 막 도착한 비행기 안, 소년의 머리 속엔 지난 반 년간 미국 방문을 준비하면서 무술 훈련과 별도로 받은 미국 사람 대하는 법과 각종 예절을 계속 되뇌였다. 미국사람은 모두 적이고 사악하다던데... 어른들의 말은 무조건 따르고 믿었던 소년은 긴장감에 가슴이 떨렸다. 이연걸은 12살 때 무술공연단에 선발되어 미국에 가게 된다. 당시 민감한 중미관계가 소년에게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 리가 만무했다. 그러나 미국은 '들어왔던 것'과는 좀 달랐다. 미국인 경호원들은 규정상 말은 별로 없었으나 다정했다. 경호원 형들이 찬 총이 신기했던 이연걸은 장난기가 발동해서 "야, 죽여준다" 하면서 총을 쓰다듬고 보여달라고 졸라 형들을 난처하게 하기도 했다. 게다가 그 엄격하게 배우고 외워야 했던 식사예절은 도대체 어디 갔는지. 식사시간은 아무 격식 없이 자유롭기만 했다. 내심 혼란스러웠지만 철학에 관심이 많은 관조적이고 조숙한 소년은 이때부터 세상에 대해 독립적인 사고를 하기 시작했다.
이 때의 영향이었을까. 성인이 된 이연걸이 조국을 떠나 새로 둥지를 튼 곳은 미국의 LA였다. 이후 이연걸은 주로 홍콩영화에만 출연하며 명성을 쌓아갔는데, 그러다 <흑협>(1996)이 미국에서도 상영되어 인기를 끌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마침내 1998년 <리썰 웨폰4>에 출연하면서 할리우드에 첫 발을 내딛는다. 그러나 첫 영화이고 할리우드의 높은 장벽을 감안하더라도 고루한 황인종 악당 컨벤션을 그대로 답습한 것이 분명한, 대사도 몇 마디 없고 무표정한 홍콩 마피아 조직 보스 역할은 분명 이연걸이 맡기엔 너무나 실망스런 배역이었다. 2000년엔 <로미오 머스트 다이>에서 첫 주연을 맡아 열연했으나 이연걸의 무술이 특수효과에 가려졌다는 평을 받는다. 그러나 성실한 노력파인 이연걸은 1인 2역을 맡은 <더 원>(2001)에선 한층 발전된 모습을 보여준다.
이연걸은 내심 할리우드의 시스템이 답답하던 차, 뤽 베송을 만나 프랑스와 홍콩의 제작 시스템과 영화에 관한 의견을 교환하면서 생각이 통한 둘은 바로 의기투합한다. 같이 영화를 만들기로 하고, 이연걸이 원안을 내놓은 지 6개월 만에 초고속으로 영화가 완성된다. <키스 오브 드래곤>(2001)은 이연걸의 속내가 많이 드러나는 영화다. 이 영화에서 이연걸은 조국에 대한 자부심을 맘껏 드러낸다. 중국 요리, 젓가락, 침술 등 중국 문화는 서양 배우의 대사를 통해 찬양된다.
다시 1974년 첫 미국 방문 때로 돌아가보자. 당시 미 대통령이었던 닉슨은 공연이 끝난 후 이연걸에게 다가가 말한다. "네 무술이 매우 인상 깊었는데 나중에 내 보디가드 할래?" 이연걸의 대답은 이랬다. "싫어요. 나는 한 사람을 위한 경호원이 아니라 중국 몇 억 명 전체의 경호원을 할 꺼예요." 2002년 이연걸은 다시 중국 땅에서 영화를 찍는다. <영웅>에서 그는 차마 진시황을 죽이지 못하고, 나라를 잘 돌볼 것을 당부하고 돌아선다. 이연걸은 미국으로 이주한 후에도 여전히 중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한다.
배우 이연걸
2003년 신작 <크레이들 2 그레이브 Cradle 2 the Grave>에서 그는 다시 경찰로 등장한다. 이연걸이 유달리 경찰, 경호원, 비밀요원 역할을 많이 맡아 온 것은 물론 액션을 많이 보여줄 수 있는 설정을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겠지만 누군가를 지켜주는 역할은 이연걸의 품성에도 잘 어울린다. 1997년 이안 감독은 이연걸에게 <와호장룡>의 이모백 역할을 맡아줄 것을 제의한다. 이연걸은 긍정적으로 검토한다. 그러나 1999년 이연걸은 돌연 이안에게 출연할 수 없음을 통보한다. 그것은 결혼을 앞둔 여자친구 리지의 임신 때문이었다. 이연걸은 리지에게 결혼 후 임신을 하게 되면 1년 간은 일을 하지 않고 옆에서 지켜주겠다고 약속한 적이 있었고 그것을 지켰다. 이연걸은 이처럼 책임감이 강하고 인간관계를 무엇보다 중시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이연걸의 겉모습에서 이런 내면을 알아차리긴 쉽지 않다. 무술은 훌륭하지만, 배우로써 이연걸은 아직도 미묘한 표정 연기는 부족한 편이다. 영화 속에서 좀처럼 웃는 일이 없고 어쩌다 웃는 모습도 어색하기만 하다(<키스 오브 드래곤>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려 보시라). 그러나 이연걸은 영화 속 허구의 공간에서 근사한 진짜 무술을 보여주는 정말 거의 유일한 배우이다. 세계를 누비며 한 발 한 발 필모그래피를 쌓아가고 있는 이연걸의 다음 초식을 기대해 보자.
- 영화 칼럼니스트 박지인 <출처 : nkino.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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