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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
| | | djbae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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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으로부터 온 복수의 영화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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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고! 당신이 극장을 떠나려면 앞으로 30초 남았다"라는 다분히 도발적인 자막이 화면 가득 점멸한다. 이윽고 화면 안의 숫자는 30 에서 거꾸로 카운트다운을 하기 시작하고 마침내 '위험'이라는 경고 등이 켜지고 나면 이제 영화는 뇌수가 터지고 검붉은 점액질의 피가 난무하는 말 그대로 충격적인 장면으로 얼룩지기 시작한다. 보는 이로 하여금 애초 경고했던 30초 이전에 극장을 떠났으면 차라리 좋았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 만드는 영화. 온갖 소문과 화제 속에 국내에도 개봉을 앞두고 있는 가스파 노에의 <돌이킬 수 없는 Irreversible>이 관객들의 불편함을 자극하는 지옥도 같은 풍경으로 가득 차있듯, 그의 장편 데뷔작 <아이 스탠드 얼론 I Stand Alone> 역시 이렇듯 파격적이며 악몽 같은 경험을 선사한다.
1998년 장편 데뷔작 <아이 스탠드 얼론>으로 화려하게 깐느에 입성했던 가스파 노에는 지금 프랑스에서 가장 논쟁적인 영화를 선보이는 감독이다. 1991년 단편영화 <까르네>로 일찌감치 주목 받았던 그는 지금까지 세 편의 단편과 두 편의 장편만을 만들었을 뿐이지만 세상에 대한 격렬한 분노와 파격적인 형식으로 악명을 날리고 있는 그의 영화에는 어떤 식의 감상이나 타협의 가능성을 찾기조차 힘들다. <아이 스탠드 얼론>은 국내에는 정식으로 소개되지 않았지만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여자의 배를 주먹으로 치는 남자의 모습이나 극중 포르노 극장에서 상영되는 포르노, 근친상간 등으로 인해 깐느에서도 격렬한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또한, 4년 만에 선보였던 두 번째 장편영화 <돌이킬 수 없는> 역시 지난해 깐느에서 상영도중 200여명이 넘는 관객들이 폭력과 강간으로 얼룩진 이 잔혹한 영화에 충격을 받고 뛰쳐나갔다는 일화를 남기기도 했다.
파격과 논쟁의 최전선에 서 있는 가스파 노에의 영화들은 잔인하리만큼 하나로 이어져 있다. 조금의 주저함이나 망설임도 없는 그것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곳에는 아무런 희망도 없다는 분노와 좌절이며 세상은 결코 천국일 수 없다는 차가운 시선이다. 1991년 자폐증세가 있는 딸의 초경을 강간당한 것으로 오인하고 무고한 남자를 살해한 한 도살업자의 생애를 다룬 단편 <까르네> 이후 그는 이 영화의 연장선상에서 지금 프랑스 사회가 겪고 있는 무력한 개인의 좌절과 처절한 복수극에 몰두해 왔다.
1998년 깐느국제영화제 감독 주간 수상작이며 시체스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했던 <아이 스탠드 얼론>은 바로 이 <까르네>의 주인공이었던 불행한 도살업자가 감옥에서 출감한 이후의 삶을 담고 있다. 무고한 사람을 살해한 죄로 감옥에서 삶을 낭비하고 출소한 후 자폐증세가 있는 딸은 보호소에 남겨둔 채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술집 주인과 함께 그녀의 어머니 집에 얹혀 사는 그. 오랫동안 변변한 직업도 구하지 못한 채 아내와 장모의 비웃음과 멸시가 극에 달하면서 마침내 그의 분노도 폭발한다. 그리고 이 영화 이후 4년 만에 발표한 신작 <돌이킬 수 없는> 역시 허름한 모텔 방에 무력하게 앉아 "딸과 섹스한 생각을 버릴 수 없다"고 고백하는 바로 그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다만 <아이 스탠드 얼론>이 제목 그대로, 그리고 "사람들은 모두 모두 혼자다. 태어날 때도, 죽을 때도, 심지어 섹스 할 때도"라는 극중 내레이션처럼 사회와 주변 인간관계에서 철저하게 고립된 중년남자의 좌절에서 시작해 분노와 폭력, 그리고 복수극을 향해 내달린다면 <돌이킬 수 없는>은 그의 고백 이후 새롭게 등장한 또 다른 남자들의 소름 끼치는 복수극에서 시작해 모든 것이 일어나기 전 가장 행복했던 순간으로 역행할 뿐이다. 하나의 사건은 복수를 낳고 그 복수의 끝은 또 다른 복수의 시작으로 맞물려 있다. 금방이라도 터질 듯 분노와 복수로 부글거리는 곳, 그 끊을 수 없는 거대한 고리야말로 어쩌면 가스파 노에가 바라보는 프랑스 사회의 현주소인 것은 아닐까?
커다란 자막으로 제시되는 '이 나라의 창자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투쟁하는 실직한 도살업자의 비극'이라는 부제로 시작되는 <아이 스탠드 얼론>에 이어 <돌이킬 수 없는>의 초반에 등장하는 지옥의 현신 같던 게이클럽의 이름이 직장(直腸)을 의미하는 '렉텀'인 것도 결코 우연은 아닐 것이다. 감독이 바라보는 현재의 프랑스 사회, 혹은 세상은 더러운 내장 같은 곳이며 그는 바로 이 더러운 사회 속에서 처절하게 망가지고 싸워 나가는 개인들의 분노와 좌절을 여과 없이 담고 있는 것이다.
세상과 싸우기 위해, 혹은 세상에 복수하기 위해 감독 가스파 노에가 선택한 무기는 폭력 그리고 파격적인 형식이다. 최근의 젊은 작가군들이 예의 과거 영화의 유산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처럼 그의 영화에서도 형식이나 내용 모두에서 혁신적이었던 거장들의 자취가 요소요소에 묻어난다. <아이 스탠드 얼론>은 영화 내내 폭력적이며 불안한 분위기를 가중시키는 주인공의 내레이션이 울려 퍼진다. 특히, 급작스런 클로즈 업과 점프 컷, 그리고 화면이 커트 될 때마다 쾅쾅 울려대는 효과음은 관객들에게 시각적인 동시에 청각적인 영화언어의 충격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부제나 사이사이 삽입되는 커다란 자막처럼 자막의 사용 역시 독특하다. 이러한 자막의 사용이나 내레이션, 효과음 등이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에의 몰입을 방해하고 거리를 유지하게 하는 고다르의 영화를 연상시킨다면, <돌이킬 수 없는>의 놀라운 카메라워크와 극악무도한 폭력과 강간, 그리고 그것을 차가운 냉소 어린 시선은 일찍이 <시계태엽장치의 오렌지> 등에서 선보였던 스탠리 큐브릭의 세계와 닮아있다. 하지만 이러한 영화사의 그늘이 그저 단순한 인용에서만 그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아이 스탠드 얼론>은 중년 남자의 분노와 폭력,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에너지를 그의 과거사부터 사회에서 소외되는 과정을 차근차근 따라가며 묘사한다. 하지만 영화 내내 등장하는 폭력적이며 불안한 분위기를 가중시키는 주인공의 내레이션과 느닷없이 등장하는 자막과 효과음 등은 관객으로 하여금 감정이입 대신 계속해서 그와의 간격을 유지하게 한다. 반대로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가는 <돌이킬 수 없는>은 영화의 초반 끊임없이 관객의 참여를 유도하는 현란하고 주관적인 카메라를 들이대지만 시간의 역전 속에서 두 남자의 나이트 클럽에서 벌이는 광기와 잔인한 폭력의 이유가 복수 때문이었음을 알 길 없는 관객에게 그 카메라는 그저 어지러움을 유발하는 폭력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까 흥미롭게도 두 편의 영화는 마치 거울을 마주한 것처럼 반대 지점에서 동일한 것이다. 이를 통해 가스파 노에는 현실을 묘사하고 관객의 감정이입을 끌어내는 영화의 방법과 관객의 영화 그 자체에 대한 실험에 몰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 가지 의문점은 그의 영화 속 분노와 복수의 대상이 이상하리만큼 아랍계 등 이주민과 흑인, 게이 등에 집중돼 있다는 것이다. <까르네>에서 감옥에서 나온 이후 주인공 도살업자가 마주한 현실은 자신이 애지중지하던 푸주간이 중동에서 이민 온 부자에게 넘어갔다는 사실이었다. 이후 <아이 스탠드 얼론>은 그의 세상에 대한 분노, 실업에 대한 불안, 격렬한 복수심의 대부분을 이주민을 향해 발산해 낸다. <돌이킬 수 없는> 역시 게이와 동성애, 아시아인 택시기사, 히스패닉 계 등 외국인에 대한 혐오감을 감추지 않는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주인공 마르쿠스와 피에르(즉 백인 혹은 프랑스인)를 지옥 같은 '렉텀'으로 향하게 하는 사람들도 (가만 보면) 모두 이들 이주민들이다. 그렇다면 두 영화의 주인공들이 지옥에서 맞는 한철을 보내게 된 것은 모두 이들의 탓이었단 말인가? 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영화 속에서 희생자처럼 보이는 주인공들이 결국 하는 일은 무엇인가? <아이 스탠드 얼론>의 도살업자는 자신의 가게를 빼앗은 중동에서 온 부자를 저주하고 복수를 꿈꾸지만 언제나 그것은 그의 내레이션으로만 전해질 뿐 현실에선 무기력하기 그지없다. 복수극의 주역인 마르쿠스 역시 희생자라 말하겠지만 영화 속에서 그가 했던 일은 결국 난삽한 파티에서 환각에 젖거나 여자친구이자 강간당한 알렉스의 지갑을 뒤지는 일 뿐이었다. 오히려 직접적인 죽음이나 폭력, 강간 등을 당하는 것은 이민자들과 게이, 여성 같은 타자들이다. 때문에 영문도 모르고 증오와 복수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그들은 어쩌면 영화에서 가장 큰 희생자들이다. 어쩌면 이는 실업이나 파산 등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점점 격하되고 있는 자신들의 처지를 외국에서 온 이민자들이 자신들의 자리를 빼앗아 갔다고 투덜대거나 혹은 다른 어떤 대상의 탓으로 돌리고 있는 현재 프랑스 사회에 대한 냉소 어린, 하지만 신랄한 빈정거림일지도 모르겠다.
<아이 스탠드 얼론>의 결말은 <돌이킬 수 없는>의 시작만큼이나 충격적이다(경고! <아이 스탠드 얼론>을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구해 볼 요량이라면 이후 글은 상당한 스포일러가 될 지도 모른다. 이제 이 지면을 벗어나기까지 30초 카운트다운이 시작된다. 30, 29, 28....3, 2, 1, 0). 보호소에 수용돼있던 딸을 찾아온 도살업자는 "우리는 함께 해야 한다"는 말과 함께 딸을 범한 후 딸을 쏴 버린다. 목에 구멍이 뚫린 채 콸콸 피를 흘리는 모습과 뇌수가 터지고 점액질의 피가 분출하는 충격적인 장면을 아무런 여과 없이 보여준다(바로 이 장면에 앞서 등장하는 것이 문제의 30초 경고문이었다). 하지만 영화는 그것이 모두 그의 머리 속에서 벌어지던 한 순간의 상상임을 보여준다(혹은 이 자체가 이미 죽은 그가 꾸는 또 다른 상상일지도 모른다). 침대에 앉은 남자는 탄식처럼 "나는 내 딸을 사랑한다. 내 인생은 실패했지만 내 삶에서 남은 것은 오직 이 애 뿐이야"라고 말하고 무표정하게 있던 딸은 오열하는 아버지를 성녀처럼, 하지만 성인여성으로서 안아준다. 이 마지막 결말이 과연 세상과의 화해나 희망의 가능성이라 말할 수 있을까? 상영 시간 내내 분노와 폭력에 사로잡힌 사악한 남자의 저주를 여과 없이 받아야 했던 관객들은 마지막 순간 마치 구원처럼 남자를 감싸 안는 소녀의 모습을 보여주고 처음으로 낭만적인 음악을 들려주지만 우리는 안심하고 세상과 화해할 수 있을까?
<돌이킬수없는>은 바로 그 남자의 모습에서 시작해(하지만 그에게서는 어떠한 희망의 징후도 발견할 수 없다)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폭력과 강간의 고통스런 시간을 거쳐 사랑하는 연인의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으로 역행한다. 그리고 등장하는 "시간이 모든 것을 망친다"는 자막처럼 가장 아름다운 시간의 흐름은 결코 '돌이킬 수 없는' 것이며 이 마지막 순간 우리가 꿈꾸는 세상과의 작은 화해의 가능성이나 희망은 어쩌면 그저 꿈속에서만 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가스파 노에는 자신의 데뷔작에서 작은 희망을 이야기하는 듯 끝을 맺었지만 다음 영화에서 다시 이 모든 것은 결코 '돌이킬 수 없다'고 비정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데뷔작 <아이 스탠드 얼론>에 붙었던 그 유명한 '한번은 봐야 할, 그러나 두 번은 보고 싶지 않은 영화'라는 꼬리표는 그의 두 번째 영화 <돌이킬 수 없는> 역시 유효한 듯하다.
- 영화 평론가 모은영 <출처 : nkino.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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